하얀 벽돌과 적삼목으로 둘러싸여 따뜻하기가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집. 실내에는 예상밖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노출콘크리트의 거친 곡면이 굽이치듯 이어지는 집안 풍경은 태초의 성에 머무는 것처럼 릴렉스한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촬영협조 (주)그린이노베이티브프로포절(GIP) 031-259-7520
▲ 동쪽 도로에서 보이는 남쪽 입면. 앞쪽에 들어올 집 때문에 창을 최소화한 것이 보인다. 대신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마련한 안마당에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 PLAN
건축주 최윤호·김주하
지역지구 도시지역, 제1종전용주거지역,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
용도 단독주택
규모 지상2층+다락층
대지면적 313.2㎡
건축면적 154.63㎡
연면적 292.77㎡·1층 137.62㎡·2층 134.27㎡·다락 15.30㎡ (연면적 제외)
용적률산정연면적 271.89㎡
건폐율 49.39% (법정 50%)
용적률 87.32% (완화 90%)
구조 철근콘트리트구조
최고높이 11.2미터
도로 북, 동측 8미터 도로 접함
주요외장재 폴라화이트벽돌, 적삼목, KMEW 세라믹사이딩
설계·시공 (주)그린이노베이티브프로포절(GIP)
건축주 최윤호·김주하
▲ 집으로 들어가는 주출입구의 모습. 북쪽과 동쪽 도로에 접해 있다.
# 내가 살고 싶은 집짓기.
수십년만에 이룬 꿈이다. 얼마전 판교에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한 김주하(48) 씨는 결혼 이후 줄곧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간직해왔다. 26년전 결혼을 계기로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갑갑증’이 시작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마당으로 나설때 비로소 느껴지는 땅 내음, 공기 내음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때마다 ‘내 집 짓고 살아야지’ 하던 다짐이 올해 초 이뤄진 것이다.
집짓기는 6개월간의 넉넉한 설계기간과 6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마무리됐다. 여러 차례 집짓기 경험을 한 바 있는 친정엄마와 친정동생의 애정 어린 개입도 정중히 거절했다. 남편 최윤호 씨와 함께 공부하고 가족들과 의논해서 모든 것을 결정해나갔다. 긴 바람 끝에 짓는 집인데 누구나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짓겠다는 간절함이 컸기 때문이다. 이 간절함은 대학생인 두 딸과 부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집이 완성되기까지 큰 힘이 되어주었다.
▲ 앞 집 때문에 남쪽을 열 수 없는 집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라운드형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이로써 남쪽과 서쪽의 햇살을 끌어들이는 창을 낼 수 있었고, 너른 안마당도 얻게 되었다.
# 집터의 한계를 극복한 설계.
부부의 집은 콘크리트 주택이다. 외부에 화이트 벽돌을 붙이고 출입구과 일부 벽면에 포인트로 적삼목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내는 송판 무늬가 새겨진 콘크리트 벽체를 그대로 노출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애초에는 단열성이 높고 건강에 좋은 목조주택을 지으려했지만,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몇 해 전 구입해 놓은 땅이다. 지난해 초 목조건축을 의뢰하기 위해 (주)그린이노베이티브프로포절(GIP)을 찾았다가, 비로소 구입한 땅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북쪽과 동쪽 도로에 접한 채 남쪽이 가로막힌 지금의 집터는 건축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안과 풍부한 자연채광을 동시에 얻기 힘든 조건이었다.
▲ 라운드형으로 디자인된 서쪽 입면. 2층 발코니는 주방과 연계되어 있는데, 테두리를 높게 쌓아 올려 프라이버시한 공간으로 조성했다.
결국 부부는 도로에 접한 면은 닫아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 입면을 둥글게 말아 채광면적을 최대한 확보한 설계안을 선택했다. 실내에 긴 회랑이 생기고 안마당에 생긴 여백만큼 바깥풍경을 누릴 수 있게 된 점이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 설계안대로 목조주택을 짓자니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다 하자문제가 우려돼 결국 콘크리트공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 부드러운 곡면이 도드라지는 1층 복도. 실내의 모든 벽은 콘트리트 그 자체다. 송판무늬를 살린 벽면에 기능성 인테리어 마감재를 칠해 콘크리트의 유해성을 잡았다.
# 콘크리트주택의 단점 보완하는 집짓기.
부부는 콘크리트 주택이 지닌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살림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첫째가 단열이 취약한 점이고, 둘째가 실내공기질 문제다. 단열 문제는 콘크리트 외벽과 단열층을 일체화하는 외단열 공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외벽을 마치 보온병의 원리처럼 단열재로 꽁꽁 둘러싸 열손실을 최소화한 후, 벽돌과 적삼목을 붙여 치장했다. 저에너지주택건축에 상당한 노하우가 있는 (주)GIP는 5리터하우스를 목표로 이 집의 배치와 단열계획을 세웠다. 5리터하우스는 우리나라 주택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65%를 절감할 수 있는 주택이다.
▲ 1층의 자녀방. 성인이 된 두 딸에게 각각의 방을 선물했다. 방마다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1 자녀 방에 딸린 화장실. 훗날 사위와 함께 방문했을때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2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보다 안쪽에 부부의 방이 있다. 자녀의 방은 복도 반대편에 자리한다.
실내의 콘크리트 벽면은 일체 노출하기로 했다. 평소 나무와 돌 같은 자연재료를 좋아하던 아내가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실내로 분출되는 오염물질을 해결해야 했다. 선택한 것이 토로라는 기능성 인테리어 마감재다. 송판을 거푸집으로 사용해 무늬를 살려낸 콘크리트 벽체 위에 하얗게 덧입힌 페인트가 그것이다. 미세한 돌가루로 이뤄진 마감재는 오염물질을 흡착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부부는 입주시 일부 가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제외하고는 어떤 새 집 냄새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한다.
1 2층 안쪽에 자리한 너른 주방. 남쪽으로 긴 창을 내고 테라스로 나설 수 있는 서쪽 창에는 접이식 우드셔터를 설치해 햇살을 조절하고 있다.
2 외관에 사용한 적삼목이 실내로 들어와 아름다운 천장을 연출하고 있다.
# 거실이 2층으로 올라가다.
이 집은 도로에서 보여지는 단조로운 이미지와 달리 집안으로 들어서면 대반전이 기다린다. 곡선의 회랑처럼 긴 복도를 둔 1층에서부터 파격적인 구조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덕분에 두 딸의 각 방과 부부의 방은 긴 복도의 양 끝에 자리해서 좀처럼 간섭할 일이 없다. 방마다는 남향으로 난 창이 있는데, 입면을 곡선으로 둥글려 얻어낸 선물이다.
3개의 방마다 드레스룸을 두고 제법 규모있는 개인욕실까지 둔 점이 의아했지만, 아내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딸들이 결혼한 후에도 사위와 함께 방문해서 자기 집처럼 자유롭게 머물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1 2층의 다락공간을 터서 만든 서재. 개방감이 넘친다.
2 2층에 올라서서 거실로 이어지는 동선이다. 굽이치는 천장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독특하게도 거실과 주방은 2층에 올라가 있다. 아내가 수년간 판교를 돌아다니며 먼저 지어진 집들을 탐색한 후 선택한 구조다. 2층에 방을 배치하면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야하고 관리비까지 상승하는데 비해, 1층에 배치된 방들은 시원하고 따뜻했다.
2층은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아 활동이 자유로운데다, 높고 아름답게 치장된 공간이 주는 특별함 때문에 가족 모두 2층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거실을 지나 남쪽 자리에는 넓은 주방이 자리를 잡았다. 잦은 가족모임으로 손님 치루는 일이 많은 아내에게 넓고 효율적인 주방은 가장 큰 로망이었다. 주방과 연계된 테라스가 있어 대식구의 야외 바비큐 파티도 문제없어 보인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26년 살림 베테랑의 꼼꼼함이 엿보인다. 현관과 연계된 대형창고, 세탁실에서 드나드는 빨래를 널 수 있는 포켓식 발코니(외부에서 보이지 않음), 주방에 딸린 보조주방과 메이드룸에 이르기까지 집을 짓다보면 놓치기 쉬운 공간들이 알차게 숨어있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