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상승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9·1대책 이후 살아나는 듯하던 주택시장이 다시 멈칫거리면서 집값 상승세는 한풀 꺾인 반면 전셋값은 ‘10·30 전월세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상승추세가 쉬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상당수 지역에서 전셋값이 집값의 70%를 넘어섰으며, 상승세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리 주택저널 편집팀 사진 주택저널 사진팀 자료 국토교통부
2005년 이후 10년째 상승 일변도…
주택시장 지형 바꾼다
며칠전 TV방송에서는 ‘수도권에서 전셋값이 매매값보다 비싼 아파트가 등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1500세대 아파트단지에서 7층의 85㎡ 규모 아파트가 2억2900만원에 팔렸는데, 하루 전날 6층의 같은 평형 아파트가 2억3000만원에 전세로 계약됐다는 것이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방에서도 전셋값과 매매가격의 역전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지만, 수도권에선 처음이다.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것은 주택거래에 있어 정상적인 가격형성이 아니다. 이 지역의 일선 중개업소들은 매매수요보다 전세수요가 많다보니 전셋값 상승속도가 매매가격 상승속도를 훨씬 앞지르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전세값이 매매가의 70% 넘는 곳 속출
KB국민은행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전셋값은 6.7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9.65%를 기록한 강서구를 비롯, 전지역에서 전셋값이 올랐고, 6개 구에서 8%가 넘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인천도 5.38%로 크게 올랐고, 경기는 7.59%로 가장 크게 올랐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5곳이 모두 경기도 지역으로 1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에는 전셋값 상승추세가 수도권 외곽을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10월까지 서울의 전셋값 상승률은 2.94%인 반면 인천과 경기는 각각 4.16%와 3.39%로 서울보다 높았다. 인천 계양구와 부평구를 비롯, 용인 기흥구, 의정부와 이천 등지의 전셋값이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국 상위 5개 지역도 대구가 3곳, 울산 1곳, 인천 1곳 등이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연수구의 6.78%를 비롯, 용인 기흥 5.16%, 남양주 4.99%, 고양 일산동구 4.78%, 의정부 4.69% 등으로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특히 그간 전셋값 상승률이 높지 않았던 지역들의 상승률이 눈에 띠는데, 이는 보다 싼 곳을 찾아 전세수요가 외곽으로 이동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를 넘는 것은 거의 일반화돼가고 있다. 서울의 경우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80%를 웃도는 곳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에서도 경기 화성과 군포, 의왕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일선 업소들의 얘기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한 부동산관련 포탈 등의 전셋값 통계에 따르면 전셋값은 2012년 9월 이후 올해 10월까지 26개월 연속 상승해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개 여름철이나 겨울철 비수기때는 매매는 물론 전세거래도 주춤하면서 가격도 오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기간동안에는 전셋값이 꾸준히 올랐다.
전셋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2005년부터다. 월간 기준으로는 비수기때 잠깐씩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전셋값이 매년 올랐다. 10년동안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져온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이미 이 기간중에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동안 부동산전문가들은 전셋값 대비 매매가격을 비교한 전세가율이 70%를 넘으면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실제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세가율이 70% 안팎에 이르면 전세를 찾는 사람보다 매매를 원하는 수요가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부동산시장 과열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최근의 주택시장은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를 넘게 오르고 있음에도 매매수요로 쉬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두고 전세수요는 늘어나고 있는데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같은 현상은 몇가지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택시장 구조적 변화도 전셋값 상승 일조
먼저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들 수 있다. 전세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매매수요의 감소와 궤를 같이하는데, 나라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주택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다. 여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전세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기존에 전세로 임대하던 집이 최근 월세로 전환되는 비율이 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그간 두차례의 큰 위기를 지나왔다. 첫 번째는 1997년의 외환위기이고, 두 번째는 2008년 미국의 모기지론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우리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다보니 대외여건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밖에서 닥친 위기가 내부 경제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두가지 사건은 우리나라의 경제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IMF로 인해 상당수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이른바 ‘고용의 유연성’ 문제가 대두됐고, 기업들은 외형보다 내실에 보다 무게중심을 두었다. 금융위기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IMF를 극복한 기업들중 금융위기에 무너진 기업들이 대부분 재무구조가 취약했던 탓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택건설업체들은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구조적 전환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간 주택시장 호황에 기대 외형적 성장을 지향하던 업체들은 대부분 쓰러지거나 어려움에 처했다. 즉 집을 사려는 주택수요가 계속 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주택시장의 수요가 줄어드는 구조적 전환점이 의미하는 바는 곧 과거처럼 집값이 계속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그간 주택수요자들의 입장에서는 주택을 구입함으로써 내집마련이라는 당면과제와 함께 집값 상승을 통해 재산을 늘릴 수 있다는 두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집값은 떨어졌다. 물론 IMF 이후에도 집값이 하락했지만, 당시에는 부동산시장 자율화 등을 통해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시장이 회복되고 집값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의 집값 하락은 IMF때의 집값 하락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곧 주택시장의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시장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앞으로 집값이 과거처럼 오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수요에 비해 주택물량이 모자랐기 때문에 집을 짓기만 하면 수요가 몰려들었고, 이것이 집값을 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현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부동산전문가들이 정부에서 부동산규제를 대폭 완화하더라도 과거처럼 집값이 폭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바로 주택시장이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규제완화가 시장과열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그리고 이 금융위기를 계기로 집값이 떨어진 것과 함께 매매와 전세의 동반패턴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즉 2009년까지는 매매와 전세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2005년 매매가격이 하락세에서 상승으로 돌아서면서 전셋값도 상승세로 반전했다. 2006년 집값이 20% 이상 급등하자 전셋값도 10% 넘게 올랐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주택매수세가 종적을 감추면서 주택거래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거래가 줄어들면서 집값도 떨어졌다. 이른바 하우스푸어 문제가 대두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이 집을 내놓았지만, 집은 팔리지 않고 결국 집 소유주들이 이자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떨어지는데도 전셋값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을 샀다가 오히려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수요자들이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2010년 집값은 2% 가까이 떨어졌는데도 전셋값은 6% 이상 올랐다. 2011년에는 매매가격은 별 변동이 없이 전셋값만 11%나 뛰었다.
젊은층 중심으로 주거의식도 변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주거의 인식 변화도 전셋값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지금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과거에는 내집마련이 직장인들의 지상과제처럼 여겨졌다.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털고 내집을 장만하는 것이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아서 주택에 청약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집은 값이 오르면서 가장 중요한 재산목록에 올라갔다. 또 돈이 더 모이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더러는 전세를 안고 은행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려나갈 수도 있었다. 내집마련이 단순히 내집을 마련하는 차원뿐 아니라 재산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수단이 됐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재테크 또는 재무설계를 얘기하면 부동산이 중심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선진국의 경우 재테크는 예금과 부동산, 주식, 기타 자산 등 이른바 포트폴리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재테크는 대부분 부동산을 불려나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내집마련에 대한 인식은 차츰 약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여러 통계를 통해서도 1인가구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굳이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의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옅어질 뿐만 아니라 집을 사더라도 예전처럼 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적어 재산형성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에 전세를 놓다가 월세로 전환하는 주택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특히 내집을 보유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노후준비 차원에서 안정적인 임대수입을 원하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오피스텔이나 원룸 주택 등 이른바 수익형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은퇴노인이 단독주택을 그대로 소유할 경우 역모기지론 등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노후에 필요한 수입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이 주택을 리모델링하거나 또는 재건축을 통해 임대를 할 수 있는 주택으로 바꾸어 월세를 놓으면 매월 일정한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기존에 전세를 놓던 집주인도 은퇴 이후를 대비해 매월 일정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월세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금리가 워낙 낮아 돈을 은행에 맡겨 놓는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매월 월세를 받는 것이 돈을 은행에 맡겨놓고 금리를 받은 것보다 훨씬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통계를 보더라도 월세물량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월세의 경우 2006년 301만1855가구에서 2012년에는 383만4566가구로 27%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는 355만6760가구에서 386만4820가구로 8%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나마 최근에는 월세전환 속도가 빨라져 이미 월세가구수가 전세가구를 추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등 공급방안도 한계
KB국민은행의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1년새 2700만원이나 오르며 3억원선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4700만원 이상 오른 곳도 있다. 올해 10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억1341만원이다. 지난해 10월의 2억8675만원보다 9.3%나 오른 것이다.
강남구와 서초구 등의 전셋값이 특히 높다. 85㎡짜리 아파트 전세를 얻는데 강남구에서는 5억원이 넘는 돈이 있어야 하고 서초구에서도 4억8000만원이 있어야 한다. 강북지역에서 같은 규모의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전셋값이 더 높은 것이다. 서울에서 13개구에서 전셋값 평균이 3억원을 넘고, 2억5000만원 이하인 곳은 5개구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전셋값 상승세가 멈출줄 모르자 10·30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책 이후에도 전셋값 상승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거기에다 지난번 9·1대책 등으로 재건축시장이 활기를 띠게 될 조짐을 보이면서 전세수요도 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부에서 전셋값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행복주택을 비롯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물량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야당에서도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역시 재원 등의 마련이 불투명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당장 전셋값이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