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공급한 첫 협동조합형 주택인 이음채가 입주 5개월을 맞았다.
2년 전부터 온라인카페에서 교류해온 주민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맞대고 소통한다.
조합자격으로 주택관리도 직접 한다.
자율형 협동조합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음채를 찾았다.
취재 지유리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 서울 강서구 공영주차장부지였던 곳에 지어진 육아협동조합 이음채.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몰려있어 생활환경이 뛰어나다.
■사업개요
위 치 서울 강서구 양천로61길 50
공급 유형 도시형 생활주택
연면적 2588㎡
건물규모 지하1층~지상6층, 24세대
세대규모 전용 48㎡
보육시설 연면적 207㎡
주차장 지하 1층 20대, 지상 7대
■이음채 입주조건
입주자격
-만 4세 이하 자녀 둔 무주택 가구
-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 소득 100% 이하,
맞벌이가구는 부부소득 합계 월평균 소득 110% 이하
(월평균 소득-3인 이하:460만6210원, 4인 이하:510만2800원)
-육아협동조합 가입 의무
거주비용
-보증금 1억500만원, 월임대료 3만원
거주기간
-2년 마다 재계약, 최장 20년 거주 가능
계약갱신 조건
-최초 조합원 신청자격 유지
(만4세 이하 자녀 양육 제외)
▲ 한 달에 한 번씩 이음채 대청소를 위해 입주민들이 뭉친다.
오랜만에 햇살이 쨍한 토요일 오후, 협동조합주택 ‘이음채’가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전체 주민이 모이는 대청소날. 하나둘씩 손에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앞마당에 모여 든 엄마들은 일층 놀이방 이곳저곳의 묵은 때를 닦고 있다. 아빠들은 층마다 복도를 돌며 비질에 여념이 없다.
모두가 바쁜데, 아이들만 신이 나 있다. 예닐곱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수선을 피운다. 그러다 장난감 한 개를 두고 몇 명이 투닥댄다. 큰 소리가 나자 한 엄마가 다가와 익숙하게 아이들 한 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타이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놀이방을 휘저으며 뛰어다닌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음채 주민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건강한 웃음이 번진다.
▲ 아이들도 청소를 돕겠다며 고사리 손을 보탰다.
첫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이음채는 서울시가 공급하는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의 첫 사례다. 입주자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주택설계와 시공에 참여하고 직접 주택관리를 맡는 새로운 형태의 맞춤형 임대주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임대주택 8만호 공급정책의 일환으로, 가양동 공영주차장 부지에 지어졌다. 지하 1층~지상 6층 건물에 전용면적 49㎡, 24가구가 모인 도시형생활주택이다.
서울시는 이음채를 ‘육아협동조합형 주택’으로 계획했다. 이에 따라 1층은 아이들을 위한 공동 놀이공간으로 꾸미고, 만 4세 이하의 자녀를 둔 무주택 가구에게 입주자격을 주었다. 2012년 진행된 24가구 모집에 231가구가 몰려 9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수차례의 면접을 거쳐 입주자를 선정하고, 협동조합주택에 관한 교육을 진행했다. 협동조합주택은 모든 입주민이 공동체생활에 참여해야하고, 일정부분 공유생활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렇게 선정된 입주자들은 보증금 1억500만원과 월 임대료 3만원을 내고 2014년 11월말부터 이음채에 거주한다. 2년마다 재계약에, 최장 20년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 일반 복도형 아파트는 통로를 콘크리트 벽으로 세운다.
이음채는 투시형 난간을 만들어 마치베란다같은 느낌을 줬다. 층마다 칠한 알록달록한 색이 산뜻해 보인다.
주택관리도 협동조합 스스로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은 완공 후 입주자를 모집하지만, 이음채는 설계 전부터 입주자를 모집하고 시공에 참여시켰다. 네 살배기 딸을 둔 윤정현 씨도 이음채가 지어지는데 한 몫을 했다.
“집을 지을 때, 설계사무소에서 평면도 4가지를 보여주더라고요. 입주자들이 각자 생활에 맞는 평면을 골랐어요. 이음채라는 이름도 우리가 정한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다는 의미를 담았죠. 이런 과정을 겪어서인지, 내 집이라는 애착이 강합니다.”
▲ 아이들이 많은 집인만큼 복도에 귀여운 동물그림을 그려
재미를 줬다. 집모양 문패는 입주민이 함께 모두 모여 만든 것이다.
시설물관리와 경비, 소방안전에 이르는 주택관리도 협동조합이 자율적으로 한다. 비용은 가구당 내놓은 25만원의 출자금과 월 1만원의 회비로 충당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총회를 열어 관리내역을 공유하는데, 입주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자세한 관리규칙이나 내용은 차차 정해나갈 계획이다. 정현 씨는 시행착오도 있지만, 직접 부딪치며 배워나가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 공용 놀이공간인 이음채움에서 모여 노는 아이들. 각 집의 장난감을 이곳에 모아 공유한다. 아이들은 더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어 좋고, 어른들은 집안 물건을 줄일 수 있어 좋다.
요즘 이음채 주민들의 화두는 교육이다. 공동 육아를 목표로 모인 만큼 체계적인 육아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공동놀이공간인 ‘이음채움’에 장난감을 두고 공유하며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다.
조합 내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이동규 씨는 요새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발굴로 바쁘다.
“봄이 오면 마당에 텃밭을 가꿀 계획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생태교육이 될 거예요. 또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수업을 만들까 해요. 비누방울 만들기나 동요율동 배우기 같은 수업이요. 참여하겠다는 집이 많답니다.”
▲ 이음채움에는 조리공간이 있어 가끔씩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기도 한다.
이웃 간 이해 폭 커져
입주민들은 이음채로 이사 온 후 주말이 분주해졌다. 매주 토요일 층별로 돌아가며 건물청소를 맡는다. 총회와 소위원회 모임도 빠질 수 없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연령대와 관심사가 비슷한 주민들끼리 종종 여가를 같이 보낸다. 공유하는 것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요즘 아파트 층간소음이 사회문제잖아요. 여기는 모두 아이를 키우는 집이니까 서로 이해해줘요. 가끔 윗집에서 시끄럽게 뛸 때가 있는데, 화가 나기는커녕 우리 집도 저렇겠구나 싶어 반성되더라고요.”
▲ 6층에는 입주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조성됐다. 올봄에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텃밭 기르기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4살 아들을 키우는 동규 씨는 이웃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이해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간혹 불만사항이 생기면, 총회 때 해결한다. 입주민으로 선발된 직후부터 온라인 카페, SNS를 통해 교류하며 친분을 쌓아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입주 후에는 조합원으로써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 마당을 바라보는 ㄱ자 구조로 설계된 이음채. 평소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게
마당을 비워두는데, 오늘은 지하주차장을 청소하기 위해 차를 옮겨두었다.
“협동조합주택에 살려면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단순히 주거공간을 함께 쓰는 것을 넘어, 일상과 생활방식을 공유해야 하거든요. 적극적인 참여자세도 필수적이에요. 조합이 자율적으로 주택관리를 해야 하니까요. 한두 사람이 미루기 시작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죠.”
아직은 협동조합 운영과 주택관리에 서툰 점이 많다는 이음채 주민들. 배우는 자세로, 함께 살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