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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집중 및]
지방권 자립의 문제에 대한 단상

인구 10∼20만의 도시도 대도시 못지않은 경쟁력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인간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도권은 거대도시화한 반면 지방권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지방의 중소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과학·문화에 기반을 둔 창조산업과 농수축산업을 기반으로 한 중소도시의 기존산업이 융합해야 한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명예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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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여의도 마스터플랜’ ‘사대문안 서울 구조개혁’과 ‘서울 2000년’ 등을 계획한 뒤 남과 북, 한반도 전체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베이징 칭화대학과 뉴욕 컬럼비아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맡았다. 석·박사 과정을 지도하게 되면 지도교수가 주제를 정하고 학생들을 연구조수로 하여 혼자는 할 수 없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 도시인프라 분석도

 

그러나 정작 베이징과 뉴욕에 가보니 거대도시들은 이제 도시설계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욕 대부분의 도시요소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100년 전 지하철을 건설하고 브루클린 다리를 만들었다. 거대도시는 그만한 인구를 수용하는 어반 인프라를 이미 구축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도농복합체 도시, 이탈리아의 파도바

 


농촌과 소도시 중심의 유럽과 미국

해외에서 교수생활을 하면 일주일에 사나흘은 여행을 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시카고, 워싱턴까지 가면서 보니 미국도 유럽도시같이 농촌과 소도시 중심이어서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가 거의 없었다. 베네치아에 있을 때는 밀라노, 파리, 꼬뜨다쥐르까지 가보았다.

 


지방권 통합의 집합도시

 

인구 25만의 프랑스 몽펠리에의 중심부는 천만도시 서울보다 웅장하고 다양했다. 이탈리아 베네또 주에는 중심도시 베네치아가 있고 주변으로 베로나, 파도바, 비첸차, 뜨레비조, 벨루노 등이 풍요로운 도농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농촌에 농업은 물론 농축산업과 특화된 산업이 있으니 당연히 시장이 있고 그들에게 시장은 광장이며 곧 축제의 장이다. 인구가 적은 농촌이지만 늘 바쁘고 즐겁다.

인구 10만~20만의 도시도 대도시 못지않은 경쟁력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인간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대도시만을 추구해온 것일까. 대도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적 인간공동체이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진정한 도시설계가라면 농촌과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을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초 지방권 자립도시의 한 전형으로 제안하였던 안이다.


도시문명 중심의 유럽조차 수도에 인구가 집중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영제국에는 수도 런던 못지않은 인구 100만 미만의 지방도시들이 있고 독일에도 인구 50만의 베를린만한 도시가 소수다. 전세계 대부분의 문명국가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문명을 이루어왔는데 왜 우리는 서울 중심의 나라가 된 것 일까.

 

조선 건국 당시 한양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로 당시 세계도시였던 런던과 파리의 인구집중도가 서울만 못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한민족이 모두 서울로 향하면서 그 집중도가 현저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지방권 산업네트워크를 이루는 방안을 설명한 다이어그램

 

나도 그런 셈이다. 내가 자란 도시는 밀양인데 밀양에 좋은 중고등학교가 있었다면 대학 가기 전까지 밀양에 살다가 서울로 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테지만 실제로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유랑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뿌리였던 지방을 잊게 되었다. 서울집중의 문제는 서울로 가면 자신의 근원을 망각하게 되는 일이다.

 


 한반도의 도시인프라. 삼국시대부터 7세기까지

 

 

가속화된 수도권 집중과 지방권 몰락

서울 유학생이던 내가 서울사람이 되어 1967년 신문회관에서 밀양·부산이 아닌 서울 마스터플랜을 전시했다. 부산보다 서울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서울 마스터플랜을 하며 구상했던 지방권 자립안은 서울·수도권에 종속되지 않는 지방권 광역도시였다. 지방권 광역도시가 모두 자신의 역사와 지리에 바탕을 둔 현대화를 이루어야 서울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불완전공동체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의 획기적 경제성장을 위해 수도권과 몇몇 지방도시에 투자를 집중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울산 산업단지 마스터플랜에 참여하면서는 울산이 한국도시의 모델이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의 울산은 서울보다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었을지언정 그 외의 모든 면에서는 불완전한 도시이고, 한때 임시수도로 국가 수출의 90퍼센트 이상을 담당하던 400만 도시 부산은 어떤 면에서는 울산보다 못한 변방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국가경제의 물량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이 지방권은 몰락하고 서울은 블랙홀이 되고 만 것이다.

 


 한반도의 도시인프라. 구한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수도권은 이미 거대도시화하였고 지방권은 대도시 변방지역이 되었다. 수도권과 지방권 간의 활발한 이동을 도모하고자 만든 KTX는 현재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간 뒤 대전에서 익산·광주로 이어지는 호남권과 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영남권으로 갈라져, 수도권과 각 지방을 연결할 뿐 지방권 발전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KTX로 인해 산업과 대학과 고소득층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되었다. 이제 서울은 어떻게든 굴러갈 것이지만 지방권은 생사의 문제를 겪고 있다. 향후 5년의 최우선적 과제는 2500만 수도권 못지않은 2500만 지방권의 자립과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황해도시공동체와 한반도 도시연합 다이어그램

 

 

지역에 맞는 개발계획 수립해야

지방권은 광역시를 중심으로 광역시에 종속된 중도시와 농촌형 소도시 그리고 농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도시는 전주, 진주, 밀양 등 역사도시와 익산, 광양, 마산 등 공단도시로 나뉜다. 그 아래 소도시들은 행정부처, 소방서 등을 갖추고 최소한의 도시형 삶을 영위하며 나머지 농촌의 중심을 이룬다.

 

지방권 문제 해결의 기본은 광역시의 구조개혁이다. 대구 마스터플랜을 하면서 보니 광역시 대부분이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채 인구만 늘어난 형국이었다. 광역시가 주변의 인간과 물류가 모여드는 중심도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공건축과 어반 인프라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수적이고, 각 광역시마다 특성화 학교와 특유의 주거단지를 만들어 문화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인구 25만 중소도시의 성공적 모델, 프랑스 몽펠리에의 도시중심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의 규모가 대구의 4분의 1에 불과할 때 만들어졌고 오페라하우스는 그 거리가 닦이던 때에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반면 한반도의 광역시는 인구 광역시일 뿐 산업이나 문화 면에서는 중소도시만 못하다. 도시의 세 축인 주거, 산업, 문화 중 주거에 있어서만 광역시가 된 것이다.

 

지방권 자립의 요체는 그 지역에 합당한 특별한 개발계획을 만드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과학·문화에 기반을 둔 창조산업이, 유럽 도농복합체 못지않은 경쟁력을 가진 삼남의 농수축산업을 기반으로 중소도시의 기존 2차산업과 융합해야 한다.

 

지방권 광역도시 거의 모두가 고려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천년도시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권 광역도시에는 천년역사도 금수강산도 보이지 않는다. 광역시마다의 독특한 역사와 지리를 복원해야 한다. 그것에서부터 수도권과 지방권이 같이 가는 길이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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