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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 교수의 도시건축 이야기]
문(門), 건축이 시작하는 공간

문이 없는 건축은 없다. 문이 있어야 건축세계가 시작된다. 동양의 건축에서 문은 다원적 공간전이를 뜻하지만, 서양건축에서 문은 이원적 공간전이를 뜻한다. 문 밖은 자연의 세계이고 문 안은 인간의 세계이다. 문을 열면 세상이 보이고 문을 닫으면 인간이 보인다. 좋은 문은 열린 마음 같아야 한다. 

글·사진 김석철(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석좌교수·명예건축대학장,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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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문과 문 사이의 공간을 통한 다원적 공간전이를 엿볼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을 맞아, 이번 달에는 건축의 시작인 문(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건축에서 문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문을 나서니 문득 나그네’ 라는 시가 있다. 문을 나선다는 말은 자기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말이다. 문에는 많은 상징이 있다. 특히 건축에서의 문은 창과 함께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문이 없으면 건축이 아니다. 피라미드에도 문이 있다. 문이 있어야 건축공간이 인간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경복궁 흥례문의 모습

 

문은 바깥세계가 안의 세계로 이어지는 자리이며 안의 세계가 바깥세계로 열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건축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으로 이루어진다. 건축의 내부공간은 안의 세계이며 외부공간은 밖의 세계이다. 문을 기점으로 해서 바깥의 흐름이 안으로 이어진다. 문이 없는 건축은 없다. 문이 있어야 건축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베이징 천안문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

문은 안과 밖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깥세상인 외부공간에도 많은 문이 있고 안의 세상인 내부공간에도 많은 문이 있다. 모든 문은 안세상과 바깥세상의 분계인 ‘입구의 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문은 하나일 수도 있지만 건축에 따라 사방으로 열리는 많은 문일 수도 있다. 동양의 궁궐처럼 위계가 다른 여러 문을 거쳐 도시스케일의 건축군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서양의 대성당같이 사방의 문 안에 한 거대한 내부공간이 자리한 경우도 있다.

 

유가의 도시원리와 주례고공기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동양의 도시와 건축에서 문은 모든 공간의 시작이며 끝이다. 문이 없으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도성과 궁성의 모든 공간군은 문으로 시작하여 문으로 끝난다.

 

베이징 도성의 경우 남쪽의 영정문으로 시작하여 중심축상의 숭무문, 정양문, 선무문을 거쳐 북쪽의 안정문, 덕승문으로 끝난다. 자금성에는 천안문, 오문, 태화문, 신무문으로 연결되는 남북을 관통하는 축상의 문이 있는가 하면 좌우 전각으로 이어지는 동서의 문이 있기도 하다.

 

서울도성에는 정남에 숭례문, 정북에 숙청문, 정동에 흥인지문, 정서에 돈의문이 있다. 숙청문은 현재 삼청터널 위에 자리했으며 숙정문이란 이름이 됐다. 사대문 사이에는 소문이 있다. 동북쪽에 홍화문, 동남쪽에 광희문, 서남쪽에 소덕문, 서북쪽에 창의문 등이다. 이 중 남은 것이 자하문으로 더 알려진 창의문과 광희문이다.

 

정궁인 경복궁에도 정문인 광화문과 후문인 신무문을 잇는 중심축상에 홍예문과 근정문이, 서측에 영추문, 동측에 건춘문이 있어 가히 문을 분계로 거대한 왕성의 공간군이 구성되어 있다. 창덕궁의 경우는 모든 문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지만 정문인 돈화문과, 진선문, 숙장문, 인정문을 거쳐 후원인 비원과 연결되었다가 다시 돈화문으로 이어진다.

 


1 로마네스크 건축의 문 2 예루살렘의 반석위의 돔. 이중의 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3 베르사이유궁의 문. 이원적 닫힘과 열림의 역할을 한다.

 

 

건축의 문과 도시의 문은 다르다

동양도시와 동양건축에서 문의 의미는 도시와 건축에서 다원적 공간전이를 뜻하는데 비하여 서양에서의 문은 이원적 공간전이를 뜻한다. 베이징 도성의 문과 자금성의 문, 서울의 성문과 경복궁의 문이 다원적 세계로의 열림과 닫힘을 뜻하는데 비해 파리나 런던의 성문이나 베르사이유궁과 윈저궁의 문들은 이원적 세계의 닫힘과 열림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단 단일건축에서 문의 역할은 서양이나 동양의 다름이 없다.

 

창(窓)이 자연이 외부공간으로부터 내부공간으로 들어오는 공간요소라면 문은 인간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고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공간요소이다. 서양건축은 벽을 쌓아 건축공간을 만들고 동양건축은 기둥과 지붕으로 건축공간을 만든다. 서양건축에서 문과 창은 가장 중요한 건축요소인 벽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유일한 요소이므로 벽 쌓는 방식과 창과 문을 만드는 방식에 따라 건축의 양식이 달라져 왔다.

 


 파리의 구개선문

 

그리스·로마 이후 서양건축사의 큰 흐름을 이어온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양식 모두가 벽 쌓기의 구조형식과 창과 문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이 된 것이다. 물론 내부공간에 있어서 벽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지붕이기는 하나 그것은 대공간형식에 국한된 것이고 대부분의 건축양식은 벽쌓기의 구조형식 그 자체이며 벽쌓기는 ‘창과 문’으로의 개구부 양식에 따라 큰 변화를 이어온 것이다.

 


 문과 문으로 연결된 한옥의 공간

 

한옥의 문은 특이하다. 한옥의 문은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만 열어도 다닐 수는 있지만 두 짝을 다 열어야 정식이다. 한옥에서 바깥의 문은 미서기지만 안의 문은 여닫이다. 여닫이문에는 항상 문지방이 있다. 집합주택에서는 현관문이 대문이다. 현관을 닫으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다. 집안에서 집안으로 문을 경계로 각자의 방이 다른 세계를 갖는다.

 

건축의 문과 도시의 문은 다르다. 건축의 문은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가는 곳이지만 도시의 문은 열린 공간에서 다시 열린 공간으로 가는 곳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천안문은 다른 문이다. 개선문은 여덟 방향으로 열린 문이지만 천안문은 자금성과 베이징의 중심축 단 한곳으로 열린 문이다.

 


 파리 라데빵스의 신개선문. 문이면서도 동시에 건물이 되는 이중의 건축이다.

 

 

좋은 문은 열린 마음 같아야 한다

건축의 문은 마음의 문과는 다르다. 마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건축의 문은 항상 닫혀 있다. 마음의 문은 열려 있어야 하지만 건축의 문은 닫혀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열린 마음의 문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듯 열린 건축의 문을 들어서면 한세상이 나타나고 건축의 문을 나서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 인간을 알게 되고 그 마음의 문으로 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건축의 문에 한도 없는 가짓수가 있듯이 마음의 문에도 수많은 가짓수가 있다. 문이란 것을 화두로 생각하면 건축의 문과 마음의 문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는 롱샹성당의 창과 문의 모습

 

건축에서 문은 대부분 닫혀 있기 마련이다. 문이 열려야 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문이 닫혀야 제 기능을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문은 아름다운 내부공간을 암시한다. 20세기 건축 중에서도 많은 건축가들이 최고의 건축이라고 하는 롱샹성당의 문은 한편의 시와 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문이다.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 정자이면서도 문루이다.

 

수원성의 방화수류정은 정자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문이기도 하다. 방화수류정에 서면 수원성 모두를 향하는 문루에 선 듯하다. 병산서원의 만대루도 그 자체가 자연으로 열린 한 큰문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닫힌 벽이기도 하면서 열린 벽이기도 하다.

 

문 밖은 자연의 세계이고 문 안은 인간의 세계이다. 문을 열면 세상이 보이고 문을 닫으면 인간이 보인다. 좋은 문은 열린 마음 같아야 한다. 아름다운 문은 아름다운 마음만큼 세상을 더 많이 깊게 알게 한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그 자체가 자연으로 열린 큰문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의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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