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구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설계자를 찾을 단계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을 구현해 줄 수 있는 설계자를 만난다는 것은 상가주택 사업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상가주택 성패의 핵심 키워드를 설계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주가 자신이 원하는 설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투입하고 노력을 기울여서 찾아보고, 부담을 갖지 말고 직접 만나보자. 분명 나와 잘 맞는 설계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 땅을 사기 전에 설계자를 결정하여 땅에 대한 분석부터 같이 해 보는 것이다.
정리 구선영 기자
설계자, 설계기간, 그리고 설계비
설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설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를 위한 설계가 좋은 설계인가? 물리적으로는 건축주가 건축물의 소유자니 당연히 건축주를 위해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건축에 사회성과 공익성 등의 공공복리 기능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건축법 제1조에 보면 “이 법은 건축물의 대지·구조·설비 및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 및 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건축법의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건축주에 관한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공복리를 위해 건축주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 건축법이다.
그래도 설계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건축주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직접 거주를 하는 경우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임대를 준다거나 주거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도 그렇다. 다만 어떤 것이 건축주를 위한 설계냐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설계는 사용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럼 설계는 건축사를 위한 것일까? 건축사가 설계를 시작할 때, 만만한 용도에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어서 좀 멋있게 짓고 싶어 하는 건축주를 만나면 ‘작품 한 번 해봐야겠다’라고 맘먹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그것은 좋은 설계가 아니라 건축사의 욕심이 반영되어 사진으로만 잘나오는 ‘보기에만 작품’인 건축물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시공자는 도면을 보고 건축물을 짓는다. 도면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어휘인 것이다. 그러나 시공자를 중심에 두고 설계를 하게 되면 경제적인 설계, 시공자와 말이 잘 통하는 설계가 될 확률이 높다. 좋은 건축물을 위한 설계가 아니라, 짓기 편한 건축물은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럼 누구를 위한 설계가 좋은 설계란 말인가? 설계는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위해 사용자를 중심에 놓고 해야 한다. 사용자란 주택 등에 사는 건축주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사용료를 지불하고 그 안에서 사업을 하는 임대자일 수도 있다.
또한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가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지나가며 그 건축물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 이 사용자들이 편리하고 쾌적하게, 건강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경제적이지만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 시 작성한 이미지(좌)와 실제 시공된 사진(우). 스케치업 등의 3D 프로그램을 통해미리 건축물의 이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실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매우 중요하다.
설계기간과 건축물과의 관계
설계를 잘 해 달라고 하면서 ‘설계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거나, ‘급하니 빨리 해 달라’는 건축주들이 있다.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어떤 일이든 제품이든 시간과 공을 들이면 좋아지게 마련이다. 간단한 제품이 아니라, 건축물과 같이 복잡한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전체는 물론이고 부분까지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그려볼수록 성과품은 좋아지게 마련이다. 한 번 더 해본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설계라는 것은 누가 하더라도 거기서 거기로 비슷비슷하게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다. 누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어떻게 설계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보고자 하는 시드니오페라하우스가 나오기도 하고, 성파밀리아성당이 되기도 한다.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처럼 한 도시를 먹여 살리는 명물이 되기도 하고, 2016년을 ‘화성 방문의 해’로 정할만큼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수원의 화성처럼 되기도 한다. 설계라는 창작활동이, 설계비만 가지고 시장경제에서 이야기 하는 경제성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동안 빨리 허가를 내주는 건축사사무소가 능력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빨리 허가를 내기 위해서는 도면이 간단해야 되고, 모형이나 투시도를 통한 결과물의 확인 절차는 생각도 못한다. 그런 설계를 가지고 어떻게 이용자의 상황을 반영하겠는가? 이용자를 위한 설계를 하지 못하는 건축사사무소를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설계기간과 설계비의 가치
간단한 산수문제 하나 생각해 보자. 설계비가 싼 설계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설계의 품질과 설계비가 비싼 설계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설계의 품질 중 어디가 시간당 가격이 더 비쌀까? 예를 들어 똑같이 100평짜리 건축물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비 1000만원에 설계한 사무소에서 설계에 100시간을 투자했는데, 2000만원 받은 설계사무소에서 300시간을 설계에 투자했다면 말이다.
시간당 설계비는 오히려 설계비가 싼 설계사무소가 1.5배 비싼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100시간을 투자한 설계와 300시간을 투자한 설계가 구체화되어 건축물로 나타났을 때의 가치는, 작게는 설계비 1000만원의 수십 배에서 크게는 수백 배의 차이가 날 것이다. 그래서 설계가 중요하다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설계비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에 투입하는 시간이 문제인 것이다. 건축주들은 설계에 투입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 주고,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건축물의 가격과 가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시간을 투입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면 나의 경우와 유사한 종류의 건축물 도면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여 도면의 품질과 분량을 확인하거나, 투시도와 모형 등을 만들어서 결과물을 미리 확인하는지를 물어 볼 수도 있다. 또 건축사가 현장에 얼마나 자주 나와서 공사를 지휘하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건축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예비 건축주 중에는 자신이 비전문가라서 어떤 건축물을 짓기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거나, 나는 건축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문외한이라고 소심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건축주에게 건축물은 가치가 가장 큰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즐겁게 건축에 대해서 공부하고, 좋은 건축사를 찾아서 조언을 받으면 된다.
사람은 몇 번 만나보면 서로에 대한 느낌이 오게 되어 있다. 건축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후에 건축사가 결정되면, 처음부터 그를 믿고 설계를 진행하자. 후회 없는 좋은 건축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설계는 필요한 것인가?
누구든 건축물을 짓고자 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가설계’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아주 당당히 건축사사무소에 와서 ‘가설계를 해 주세요’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그 요구의 정당함과 도덕적인 면은 차치하고,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설계는 건축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건축설계는 일반적으로 기획업무, 계획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로 나뉘며, 넓은 의미로 보면 ‘공사감리’까지를 설계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가설계를 어느 정도 상세하게 진행해주느냐에 따라 예비 건축주들은 기획업무와 계획설계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설계안을 가설계로 받아 볼 것이다.
가설계는 대개 무료로 진행해 준다. 가설계는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수주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지만 대가없이 진행해 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기획업무인 가설계도, 계약을 하고 비용을 받으라고 권고하지만 아직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가설계 중 제대로 고민한 설계가 없다는 것이다. 설계사무소에서 설계를 계약하기 위해서 가설계를 해 주지만,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맛보기만 보여줄 뿐, 중요한 노하우나 핵심은 표현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도 최소한으로 투입하여 작업을 하므로 제대로 된 설계 계획안을 받아 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가설계를 보고 설계사무소의 수준을 판단하거나 계약을 할 경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으며, 원하는 결과물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지명도 있는 설계사무소에서는 가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좋은 설계는 건축주와 설계자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수차례 협의를 하면서, 각자의 의사 표시를 하고 서로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가설계를 하면서 표현하게 되면 아이디어만 빼앗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명도 있는 설계사무소에서는 가설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계가 어떻게 건축주에게도 도움이 되겠는가? 가설계를 할 때, 우리 가족이 몇 명인지, 나이는 어떠한지, 학교는 어디에 다니는지, 앞으로 그 집에서 몇 년을 살 것인지, 장미를 좋아하는지 철쭉을 좋아하는지, 집 가꾸는 취미가 있는지 아니면 유지관리를 힘들어 하는지 등등을 물어보고 가설계하는 설계사무소가 있는지 알아볼 일이다.
우리 가족의 개성과 생활 패턴, 요구사항을 모르고 토지이용계획원 한 장만 달랑 가지고 한 설계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건축주들은 여러 가설계에서 장점만 뽑아서 설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설계에서 장점만 취한다는 것은 이상한 형태와 결과물이 될 확률이 높다.
각자 별개로 있으면 장점이지만 같이 공존하면 어울리지 않아 단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 장점들이 붙어 있으면 상반되어 서로를 해칠 수도 있다. 우선순위와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고만 한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설계자 구하기
설계자란 누구인가?
일반인들은 설계자에 대한 다양한 호칭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름으로는 ‘소장’이라는 호칭이 있다. 이것은 ‘설계사무소의 장(長)’이란 의미로 사용되는데 건축사 뿐 아니라, 규모가 좀 큰 사무소에서는 건축사 자격이 없는 직원을 소장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건설현장의 현장소장, 아파트 관리소장 등 수많은 소장과도 겹치는 호칭이므로 정확한 이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설계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호칭이다.
그 다음으로 ‘건축가’라는 호칭이 있다. 건축가란 건축사를 포함하여 건축설계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을 이르는 용어다. 국가기관에서 주는 자격 기준도 없다. 정확하게는 건축가협회에 가입한 사람들끼리 부르는 호칭이다.
다음은 ‘건축사’라는 호칭인데 설계자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름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건축사법에서는 건축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열거나 설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건축사를 보조하여 설계업무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건축사보’라고 한다.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건축사를 제외하고는 경력과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 건축사보라고 보면 된다.
▲개략적인 형태를 확인하고 건축주와 협의하기 위하여 계획설계 단계에서 만들어 보는 모형이다.
내가 원하는 건축사의 역할을 정해라
내가 원하는 건축사란 멋진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 의견을 제대로 듣고 최대한 디자인에 반영해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한 건물의 용도나 목적에 맞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사업성을 높여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두를 충족시키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경우를 원하는가? 이것이 우선 명확해야 좋은 건축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설계 기간을 충분히 주고 설계비 또한 적절하게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은 건축사를 설계자로 선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공사 좀 깨끗하게 한다 싶으면 ‘우리 집 좀 지어 주세요.’라고 시공자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나는 아는 게 없으니 알아서 잘 좀 지어주세요.’라고 시공자에게 설계와 시공을 일괄로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건축사라는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공자에게 부탁을 하면 설계도 시공자의 마인드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내 집이 나에게 맞춤으로 디자인되고 나의 가치관과 생활 패턴에 맞는 집으로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시공자의 경제성이 우선되고 시공성이 우선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 설계의 발주자는 누가 되겠는가? 당연히 원래의 건축주가 아니라 설계를 건축사사무소에 의뢰하는 시공자가 설계의 발주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자는 발주자인 시공자의 요구와 시공성, 경제성에 맞추어 설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설계 협의 몇 번 하고 공사에 들어가게 되며, 빨리 진행하면 할수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아쉽고 답답한 일이다.
건축사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건축사의 역할과 스타일이 결정되었다면 그 다음은 그런 건축사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선 건축 관련 잡지나 정기 간행물, 작품집이나 건축 도서 등 오프라인을 통하여 내가 원하는 건축물을 찾는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키워드로 검색하여 찾아 들어가면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홈페이지가 발견되면 그 곳에 올라온 자료를 가지고 작품 수준을 판단한다.
요즈음에는 건축사들도 작품집 등 인쇄물 보다는 웹상의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건축물의 사진 뿐 아니라 소소한 건축시공일지와 기술자료 등까지 올리므로 재미있게 읽을거리가 많이 있다. 이곳을 참고하여 설계자의 성향이나 수준을 가늠하면 될 것이다.
둘째, 신도시 등 주변에서 마음에 드는 건축물을 찾게 되면 건축주를 만나 실제 진행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 본다.
그러나 이 방법은 주의를 하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좋은 점을 이야기를 해 주는 경우에는 소득이 있을 것이나,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는 건축주가 많지 않을뿐더러 건축주와 설계자 간의 다툼이 있었을 경우 그것이 어느 쪽 때문이었는지를 가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계획안이 건축주를 충족시키지 못했는지, 아니면 건축주가 설계비보다 과다한 양의 성과물을 요구했는지 등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기 전에는 명확치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최종 형태와 재료를 확인하고 건축주와 협의하기 위하여 중간설계나 실시설계 단계에서 만들어 보는 모형이다.
셋째, 우선 하나의 건축사사무소를 선택한다. 건축사사무소와 허심탄회하게 내가 짓고 싶은 집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오랜 시간(최소 3개월 이상) 다듬어 나가보자.
나중에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걱정된다면 조감도나 모형을 제작해주길 요구하여 미리 결과물을 확인하여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불안하면 단계별로 계약한다. 열심히 알아보고 계약한 설계사무소가 도저히 내가 원하는 결과물은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걱정이 앞선다면 단계별로 계약을 하면 된다.
처음에 양해를 구하고 계획설계, 실시설계, 공사감리 등으로 구분하여 계약을 하면 된다. 설계자는 중간에 해약한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설계를 해 줄 것이다.
도중에 서로 스타일이 맞지 않거나 작업 내용이 불만스러우면 중간에 일을 한 만큼 정산을 하면 그래도 서로 금전적인 손해와 시간적인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 설계자와 계속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설계자도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건축주와 끝까지 일을 같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끝으로 내가 원하는 설계 수준에 적정하게 청구되는 설계비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경우의 건축주들은 건축물에 사용하는 자재를 비싼 자재로 바꾸는 데에는 별로 주저하지 않는 반면, 설계비는 정말 아까워한다. 이러한 현상은 설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미술이나 조각, 서예 등에 비해 건축이 창작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적한 수준의 설계비조차 아까우면 좋은 건축물을 얻을 자격이 없다.
계약서 작성하기
계약서란?
설계를 시작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다. 계약서를 쓰고 안 쓰고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점에서 계약서는 건축주와 건축사의 권리와 의무를 보호 받을 수 있는, 얇지만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치이다.
그러나 한 보험회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건축사를 상대로 한 청구소송가운데 55%는 건축주가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통계자료의 의미는 건축주가 건축 설계 및 감리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며, 건축사가 실제로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이 무엇인지 계약서에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다는 의미이다.
또한 건축주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건축사 역시 잘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중요한 것은 건축주가 직접 찾은 건축사가 아니라 시공자가 선정한 건축사가 더 많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설계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하거나, 건축사는 모두 거기가 거기지 하는 마음으로 설계를 시작하는 경우다. 설계 협의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으니 건축주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에는 불만이 쌓이고, 손해를 입게 되어 법정에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좋은 계약서 작성하기
잘 활용만 한다면 여러 가지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는 것이 계약서다.
첫째로, 아주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도면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내용들을 분명히 정할 수 있고, 목표와 과정을 명확히 해두면 서로가 만족하는 설계 및 감리의 토대가 마련된다.
반면 계약 당사자 사이의 생각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서로 분명하게 협의하지 못하거나 합의한 사항을 정리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한다.
둘째로, 법적 책임과 비즈니스의 리스크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다.
계약서 작성을 통하여 처음부터 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시작하면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프로젝트마다 독특한 요구사항과 그에 따른 프로세스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재정상태 뿐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목적과 비전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상호간의 권리와 보상, 책임과 리스크까지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셋째로, 미래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바뀔 수 있다. 계약서에는 쌍방이 변경되는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법을 정해 놓아야 한다. 예상 가능한 변경과 예상 불가능한 변경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계약서에 명기해 두어야 하고, 변경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정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로, 계약서는 분쟁 해결의 수단이다.
모든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가 계약 조건에 따라 서로 신의를 갖고 계약 의무를 이행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지만, 오해나 의견 차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문제점을 미리 예상하여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는 없지만, 분쟁 발생 시의 해결 방법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어야 좋은 계약서다.
계약서의 유형
계약서는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사용하는 표준계약서가 있고, 공공기관이나 단체에서 사용하는 계약서가 있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사용하는 표준계약서는 ‘건축물의 설계표준계약서(국토해양부 고시 2009-1092호)’와 ‘건축물의 공사감리 표준계약서(국토해양부 고시 2009-1093호)’가 있다.
공공기관, 대형단체나 대기업은 지속적으로 건설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구체적인 자체 계약서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과 프로젝트별 특성에 맞춘 자세하고 구체적인 계약서라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상가주택은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사용하는 표준계약서 정도라면 대부분의 내용이 포함될 것이다. 추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거나 각자의 상황에서 특수하게 필요한 것은 특약사항으로 계약서 뒤에 추가하면 된다.
유훈조 ㈜유림피엔씨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전통건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대건축에 전통건축의 개념을 적용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 상업시설, 종교건축 등 다채로운 건축물을 설계하고 있으며, 최근 많이 대두되고 있는 상가주택의 사업성과 관련된 다양한 해법에 관심을 갖고 작업 중이다.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한국환경공단 VE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