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또 즐거운 집이라는 뜻의 ‘낙락헌(樂樂軒)’.
둥글게 돌아가는 흙담을 따라가며 한옥의 몸채와 지붕을 경쾌하게 펼쳐낸 낙락헌은 그 이름만큼이나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집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또 다른 흥미진진한 반전이 기다린다. 바로 한 지붕 아래 양옥과 한옥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낙락헌의 반전 매력을 만나보자.
취재 구선영 기자 사진 왕규태 기자
▲두 개 층으로 구성된 낙락헌은 층마다 다른 양식을 적용했다. 1층에 해당하는 한옥은 지면 보다 다소 높이 위치해 주변 경관이 잘 보인다.
▲낙락헌 지하층은 양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거실 앞으로 넓은 선큰 마당을 두어 쾌적함을 더했다.
▲곡선으로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담장이 멋스럽다. 집의 방향도 지형을 따라 북한산과 마을을 향해 틀어 더 많은 경관을 담는 집이 되었다.
마을의 터줏대감 느티나무와 마주한 집
겨울 아침에 찾아간 은평한옥마을. 북한산 봉우리에 둘러싸여 아늑하면서도 햇살이 고루 드는 양지 바른 마을이었다. 155필지의 거대 한옥마을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들어선 한옥들이 어림짐작해 20여 채는 넘어 보인다.
▲집을 휘감듯 곡선으로 길게 늘어선 담장이 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3년 전 가을 무렵, 김은진 씨는 남편 이병철 씨의 손에 이끌려 은평한옥마을로 향했다.
‘거긴 시골 아닌가. 난 시골에서는 못 살아. 더구나 한옥을 짓는다니! 상상도 못해 본 일이야.’
이렇게 되 뇌이던 아내의 철옹성 같은 마음의 벽은 은평한옥마을과 마주하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은평한옥마을 내에 자리한 느티나무정원에서 바라본 마을. 오른쪽 지붕 낮은 한옥이 낙락헌이다. 낙락헌의 다이닝 룸에서 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정면으로 마주 보인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의 법칙을 믿어요. 그런데 땅에도 인연이 있다는 걸 그날 깨달았어요. 이 마을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거든요. 아! 여기에 살아야겠구나.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들었어요.”
부부는 한옥마을 한복판 즈음에 위치한 땅을 골랐다. 땅의 특징이 있다면 터 앞으로 200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보호수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옥에 들어서면 북한산과 마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때만 해도 집안에서 보이는 전망이 이렇게 좋을지 몰랐어요.”
사실 부부만 감을 잡지 못했을 뿐, 부부의 집을 설계한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소장은 이 터가 지닌 특별함을 익히 알아냈다. 집은 느티나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지점에서 시작해 길고 둥글게 돌아가는 터의 모양새를 따라 차곡차곡 물러앉으며 북한산과 한옥마을의 전망을 파노라마처럼 끌어안고 있다.
▲대청마루 측면에도 창을 열어두었다. 안방이 대청마루보다 뒤로 물러나면서 더 넓은 경관을 품게 되었다.
시원하게 열린 집, 위층 한옥
땅은 인연의 법칙처럼 만났지만, 한옥이라는 양식의 집에서는 또 어떻게 살 것인가가 숙제로 남았다. 김은진 씨는 결혼 이후 20년 넘게 도심 속 아파트에 살아온 워킹우먼이다.
국악프로그램 전문 방송작가이자 퓨전국악공연 기획자로 일하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병행해야 했던 그녀에겐 뭐니 해도 집은 편리해야만 가치가 있었다. 스스로를 “아파트 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1(하나)도 못 느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파트와 궁합이 맞았다.
▲3칸 대청마루는 우물마루와 서까래로 전통의 맛을 냈다.
“한옥에 살더라도 편리한 현대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겠고, 최대한 누리고 싶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조정구 소장이 그 요구를 다 소화해내더라고요. 신기했죠.”
부부는 조 소장이 내놓은 첫 계획안에 흡족하게 동의했다. 조 소장이 찾은 해법은 밖에서 보면 2층 한옥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절반의 양옥, 절반의 한옥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퓨전주택이었다.
▲위층 한옥에 자리한 안방. 창호지로 투과되는 빛이 편안하다.
지면보다 땅을 파고 들어가 반지하처럼 자리한 아래층은 콘크리트 구조를 적용한 양옥으로 설계하고, 콘크리트 기둥과 상판 위에 단층 한옥을 앉혀 외부에서는 오롯한 한옥으로 보이게 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에어컨은 벽장을 만들어 숨기거나 천장에 매립했다.
위층 한옥은 한옥 본연의 멋을 흩트리지 않으면서도 거주자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알뜰하게 챙긴 흔적이 역력하다. 누마루처럼 돌출된 부분에 자리한 주방과 다이닝룸, 3칸 대청마루와 안방이 가로로 늘어서 있는데, 각각의 독립성도 갖으면서 오가기도 편리한 동선이다. 남동향으로 앉은 대청마루와 주방은 서까래와 굵은 보, 우물마루로 한옥의 자연미를 한껏 드러냈다.
▲손님방. 욕실을 방안에 두고 다락공간도 두었다.
▲안방에 딸린 욕실이다. 욕조를 바닥에 매립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방향에 가로로 긴 창을 내어 전망을 즐기게 했다.
주방에 다용도실이 없는 점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내는 “그 대신 우리집에는 5개의 창고 같은 수납공간이 적재적소에 숨어 있다”며, “예를 들어, 빨래는 1층 세탁실에서 해결하고 곧장 1층 선큰마당에 널 수 있어 동선이 짧고 오히려 편리하다”고 말했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실이 끝나는 지점에는 손님방을 두고 대청마루와의 사이에 유리문을 달아 독립성을 준 점도 눈여겨보여진다. 한지를 발라 한식방처럼 꾸민 손님방에는 벽 속으로 숨은 여유 공간도 두었다. 계단실 상부의 빈 공간을 막지 않고 활용해 수납공간이나 다락공간으로 활용하게끔 배려한 것이다.
▲집에는 두 곳의 출입구가 있다. 주차장을 거쳐 들어오는 아래층 현관과 솟을대문을 지나 대청마루로 드나드는 길이다.
아늑하게 닫은 집, 아래층 양옥
이 집에는 두 곳의 출입구가 존재한다. 한 사람 남짓 드나들 수 있는 아담한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 마당과 기단을 거쳐 위층 한옥의 대청마루로 들어설 수 있다. 또 다른 길은 주차장을 통과해 들어가는 아래층 현관이다. 한옥을 떠받든 콘크리트 구조판 덕에 장을 보거나 차에서 내렸을 때 비를 맞지 않고 현관으로 짐을 옮길 수 있다.
▲아래층 안쪽 깊숙이 동남향의 햇살을 불러들이는 창을 내고 양옆으로 신발장과 수납창고를 마련해두었다. 벽에 보이는 나무문은 접이식 도어로, 거실과 현관을 분리할 수 있다.
▲접이식 나무 도어를 닫자 독립적인 거실이 되었다.
새하얀 아래층 양옥은 미니멀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다채로운 방향으로 난 창과 넓은 선큰마당을 통해 외부의 빛이 드나들며 변화무상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거실은 현관에서 몇 계단 아래 움푹하게 위치해 아늑하기까지 하다.
▲현관 로비보다 낮게 위치한 거실. 선큰마당과 마주하며 아늑한 공간감을 준다.
거실은 필요에 따라 더욱 독립성 있는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거실과 현관 로비를 분리하는 두 짝 접이식 나무문을 마련해 두고 손쉽게 열고 닫는다.
거실을 지나 가장 안쪽에는 아들 연준씨의 방이 널찍하게 자리한다. 세탁실과 욕실도 거실을 지나 안쪽에 자리한다.
▲1층 안쪽에 마련된 세탁실. 선큰마당과 가까워 살림동선이 짧아진다.
현관 출입구 안쪽에는 신발장은 물론이고 덩치 큰 살림살이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형 수납공간도 마련했다. 겉보기엔 미니멀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면서,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공간이 버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실속을 챙겼다.
▲김은진 씨가 가장 오랜시간 머문다는 다이닝룸. 느티나무 정원의 사계를 고스란히 몸으로 체감하며 하루를 비우고 재충전하는 공간이다.
뜻밖의 집에서 즐기는 심플라이프
“이사 오면서 살림의 절반을 버렸어요. 아마 몇 트럭 될 겁니다. 그렇게 버리고 나면 큰 일 날 것 같죠? 전혀요. 오히려 사는 게 더 편해졌어요.”
김 씨의 표현으로 “의도치 않게”, 가족들은 이 집에서 심플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텅 빈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실감한다고 전한다. 그 빈 공간에는 물건 대신 자연의 빛이 드나들고 풍경이 스며든다.
▲‘낙락헌’은 집주인 김은진 씨가 이름을 짓고,
캘리그라피 1세대 작가인 이상현 씨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다.
“대청마루가 온통 창이잖아요. 누군가는 춥지 않느냐고 하는데 요즘 기술이 발전되어서 그런지 외풍을 못 느껴요. 또 그렇게 전망을 열어둘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되었죠. 이 집에서 사계절을 그대로 느꼈어요. 봄이면 나뭇가지에 물기가 돌면서 생명이 돋는 게 다 보여요. 가을날 바람이라도 불면 마른 잎들이 나비처럼 흩날리는 것도요. 정말 예뻐요.”
▲계단실과 대청마루 사이에 유리문을 두었다.
유리문 너머에 손님방이 자리한다.
가족이 가장 좋아한다는 다이닝룸은 이 집의 전망대 같은 공간이다. 그곳에 길게 펼쳐 둔 나무 테이블에 앉으면 마을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마을주민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 일도, 관광객들의 인사에 응대하는 일도, 그녀에겐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일상이 되었다.
“이 집에 낙락헌(樂樂軒)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낙락(樂樂)은 즐겁고 편안하다는 뜻도 되고, 음악이라는 뜻도 되죠. 한글로 쓴 이유는 발음처럼 낙낙한 여유가 있는 집이 되었으면 해서고요. 영어로는 knock knock(노크)로 들리기도 해서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니 재밌잖아요.”
▲긴 아일랜드 작업대와 빌트인가구를 들여 현대적으로 꾸민 주방이다.
햇살이 따사롭게 들이치는 다이닝룸에 마주 앉은 김 씨는 집 지으며 즐거웠던 기억들을 술술 풀어낸다. 땅을 처음 보고 가슴이 뛰던 순간부터, 아파트 아니면 죽을 것 같이 살았던 자신의 손에 반전 한옥의 계획안이 쥐어지던 순간의 환희, 풍물패를 초빙해 손님들과 함께 신나게 한판 신고식을 펼쳤던 상략식의 추억까지도.
“집짓기는 인생에 단 한번뿐인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그 이벤트를 맞이하는 자세로 준비하면 집짓기가 훨씬 행복해진답니다.”